한강에서 밀려온 얼음덩어리가 망망대해를 떠도는 빙하(氷河)를 연상케 하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 김포 전류리 포구.
지난 11일 새벽 5시. 혹한 추위 속에서 어부들이 주섬주점 어구(漁具)를 챙겼다.
5t남짓한 고깃배 10여대가 요란한 모터 소리를 내며 만선의 꿈을 안고 출어(出魚)에 올랐다.
포구를 떠난 고깃배는 3시간 남짓 흐린 오전 8시께 돌아왔다.
뱃전에는 참숭어가 펄떡거린다. 어른 팔뚝만한 ‘놈’의 몸짓은 동트는 새벽 포구에 활기를 불어 넣는다. ‘놈’을 내려놓는 어부의 모습에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몸을 섞는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 포구는 한강 하구 최북단 어장이다.
이곳 어부들은 김포대교~전류리 어로(魚路) 한계선 14㎞의 어장에서 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 나간다.
이 어장의 명물은 참숭어와 새우, 웅어, 참게 등이다.
그중 웅어는 수라상에 올랐던 최고급 어종에 속한다.
얼마전까지 포구는 군사분계선과 맞닿은 탓에 고기잡이는 물론이고 관광객 출입이 어려웠다.
기자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옛 포구의 잔상은 실망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초소 근무를 서는 초병이 오해할까봐 조심스레 철책 사이로 한강을 바라봤던 기억이 아련하다.
철책은 이방인의 자유로움을 가로막았고, 어부도 관할 군 부대에 신고를 해야 삶의 터전으로 나갈 수 었었다.
다행히 몇해 전 포구 주변을 휘감았던 철책이 뜯겨져 나가면서 이제는 관광객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철책이 걷히자 그 흔한 횟집 하나 없었던 포구에도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2008년에 어선을 정박할 수 있는 선착장이 만들어졌다.
현대식 포구의 모습이 갖춰지자 전류리 포구 자율어업공동체 백성득(52) 회장과 어부들은 힘을 합쳤다.
수산물 직판장을 마련한 것이다. 오는 18일 문을 여는 이 직판장은 지척에 펼쳐진 황금어장을 바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전류리 어민 27명의 한(恨)과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꿈이 깃든 곳이다.
전류리 어장에서는 4~6월 황복과 웅어가 잡힌다.
이중 웅어는 자산어보에 ‘횟감 중에 최고’로 적혀있을 정도로 맛 좋기로 유명하다.
웅어는 예로부터 ‘위어’라고도 불렀는데 조선시대에는 전류리 포구 인근에 ‘위어소’라는 웅어 전담 관청을 만들어 수라상에 올렸을 정도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황복과 웅어철이 지나면 9월말까지 농어가 주로 잡힌다. 그 사이 8월에는 새우가 올라온다. 10월에는 뱀장어와 참게가 제철을 만난다.
요즘은 전류리 어장은 참숭어 풍년이다. 시쳇말로 ‘물반 고기반’이다. 포구에 오는 참숭어 회는 1㎏당 1만원에 맛볼 수 있다. 활어는 마리당 5천원에 살 수 있다.
그동안 전류리에서 잡히는 웅어는 일반인들은 맛볼 수 없는 귀한 몸이었다. 고급 횟집에서 전량 입도선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산물 직판장이 문을 열면 웅어을 맛볼 수 있다.
백 회장과 자율어업공동체 회원들은 포구를 찾는 관광객에게도 웅어를 내놓기로 했다.
백 회장은 “미식가들을 위해 수라상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어부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김포시도 화답했다. 전류리 포구를 관광어촌으로 개발하는 청사진을 내놓은 것이다.
전류리 포구 개발에 대한 어민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전류리 포구는?
양평 양수리에서 만난 남한강과 북한강이 바다에 이르는 사이에 있는 포구는 전류리가 유일하다.
남과 북이 나뉘기 전까지만해도 조강포, 신리포, 마근포 등의 포구가 한강 하구를 따라 쭉 이어져 조업을 했지만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
황금어장이 지척에 펼쳐져 있지만 이 곳 어부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선에 가로막혀 먼 바다로 뱃길을 잡을 수 없다.
분단의 상처는 전류리 어부들에게 포구 선착장에서 바다 쪽으로 200m, 한강 쪽으로는 일산대교까지만 허락했다.
바다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정작 바다에 나가지 못하는 모진 운명이 60년째 계속되고 있다.
강 위에 떠 있는 빨간 부표까지가 어부들의 공간이다.
부표 위로는 북한 개풍 땅이다. 선착장에서 불과 200m 떨어진 곳이다.
5t짜리 고깃배를 포함해 27척의 크고 작은 어선은 모두 가로 세로 1m 크기의 붉은 깃발을 배에 달고 조업을 한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우리 측 배를 쉽게 식별해 내기 위한 방편이다.
선착장에 매달린 고깃배 몇 척이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모습은 순탄치 않은 전류리의 현재를 고스란히 말해주고 있다.
새삼 전류리 포구가 주목받는 이유는 바다와 한강이 만나는 그 기막힌 조화가 만들어낸 ‘황금어장’ 때문이다.
바다는 하루 두 번 제 몸을 육지로 끌어올렸다가 다시 원래 방향으로 밀려 나간다.
바다가 육지로 향하고 한강이 바다로 향하는 그 지점에서 역사가 이뤄진다.
▶전류리 포구 가는 길?
전류리 포구는 국도 48호선의 우회 도로인 지방도로 78호선(한강 제방도로)를 따라 서울에서 김포를 거쳐 강화 방향으로 가다보면 ‘전류리 포구’ 간판이 보인다. 이 간판을 지나 100m 정도 직진 후 오른쪽으로 꺾으면 도착할 수 있다.
중부일보 천용남기자(cyn@joongboo.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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