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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대로 말리지 말게 하니..[2]  |  자유게시판 2023-02-05 23:45:00
작성자   조회  199   |   추천  18

             이승만

[ ..... 보통 나물 두가지에 국 한가지로 식사를 했다 .......

 ......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     ]

[ .....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

  .....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     ]

[ .....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 .......    ]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 했지요 


1947년 이화장 뒷집에 살았던 인연으로 李承晩 대통령 일가와 14년간 생활했던 方在玉(71)씨를 만났다. 이화장을 시찰하러 왔던 李起鵬씨가 그녀에게 청소를 부탁했고 그 일을 계기로 이화장에서 경무대, 다시 이화장까지 대통령 내외와 가장 가까이서 지내게 되었다. 경무대 禹石根(우석근) 경사와 결혼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을 매우 자상한 분, 프란체스카 여사는 매우 알뜰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方在玉씨가 맹장염에 걸렸을 때 대통령은 方씨의 아버지를 경무대로 불러서 수술을 시켜도 좋은지 물은 다음 수술하게 했다. 처녀의 몸에 칼을 대려면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소탈한 성격의 李承晩 대통령은 보통 나물 두 가지에 국 한 가지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저녁 식사 때면 낮에 먹던 반찬 갖고 오라고 말하셨어요. 손님을 초대했 을 때 외에는 특별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어요. 생활하시는 게 일반 서민 들하고 하나도 다르지 않았어요. 오히려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궁핍하게 살 았어요』 


프란체스카 여사는 경무대에 있을 때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고 한다. 실핀으로 머리를 감았다가 드라이로 말리는 게 고작이었다. 옷도 산 적이 없다 고 한다. 천을 구입해 와서 비서인 김신영씨와 함께 블라우스를 만들어서 입었다. 경무대에서도 옷을 꿰매 입는 건 여전했는데 어느 날 대통령이 方在玉씨에게 이렇게 하소연을 했다. 

『대통령께서 내복을 들고 저에게 「재옥아 이 꿰맨 걸 나더러 또 입으라 그런다」하시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던 기억이 나요. 너무나도 알뜰하신 영부인이었죠. 양말도 기워 신고 가루비누도 숟가락으로 재서 썼어요. 무섭게 절약하셨어요. 오스트리아에서 영구 귀국하실 때는 다 떨어진 행주까지 갖고 오셨더군요』 

14년간 한집에서 생활하면서 대통령의 수발을 들었던 方在玉씨는 두 사람이 부부싸움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대통령이 급한 성격이어서 화를 내면 할머니(方씨는 프란체스카 여사를 할머니라고 지칭했다)가 일단 피하기 때문에 부부싸움이 되지 않아요. 


할머니가 李대통령의 음식을 일일이 만들어 드리고, 또 다른 사람이 만든 음식을 일일이 확인해 봤다는 얘기들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할머니가 우리들에게 지시를 하면 우리들이 알아서 척척 했지요. 우리들에게 많이 맡겼어요. 소탈한 성격이어서 아랫사람들 하는 일에 별로 간섭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두 분 내의와 양말은 항상 할머니께서 직접 손으로 세탁하셨어요. 언제나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셨어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일하는 우리들에게도 늘 「고맙습니다」하고 인사하셨지요. 한국말을 배워서 우리들에게 간단한 명령어와 단어를 사용해 말씀하셨어요. 

두 분은 아랫사람들과 격의없이 지내셨어요. 그야말로 인정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 셨어요. 제가 허리가 아파 고생할 때 할머니께서 허리에 안티프라민을 바르고 손으로 맛사지해 주셨던 일을 잊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명절 때 선물이 들어오면 모아두었다가 일하는 사람들 생일이 되면 나눠주셨어요』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나이가 많아 세상 물정에 어두웠다고 말하는 것은 와전된 얘기라고 전한다. 아침마다 자신이 직접 일간신문과 경제신문을 갖다 드렸고 신문을 꼭 읽었다는 것이다. 


프란체스카 여사가 李起鵬씨의 아내 박마리아와 유일하게 친분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진 것도 잘못된 점이라고 지적했다. 김정열 국방장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 윤치영 내무장관의 부인들과도 친밀하게 지냈으며 정운수 의원 부인 편정희 여사, YWCA 총무였던 박에스더, 이화여대의 金活蘭 박사, 김신실·김영의 교수, 중앙대 설립자 임영신씨 등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사람들이 경무대로 프란체스카 여사를 자주 찾아왔다고 한다. 김활란 박사와 임영신씨는 李承晩 대통령 영결식 때 흰족도리를 썼을 정도로 친밀하게 지냈다. 


方在玉씨는 李대통령이 하야하던 날 경무대에서 근무하던 사람들이 너무 많이 울어 울음바다를 이루었다고 일러주었다. 이화장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기름이 없어서 총무처에 기름을 좀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쌀을 살 돈이 없어서 온실의 화초를 팔아서 쌀을 사기도 했다. 

『대통령께서 돈이 없어서 우리들에게 월급을 못 주실 거라는 걸 알았지만 두 분을 너무 존경하고 좋아했기 때문에 모두들 이화장까지 따라왔어요. 함께 생활하면서 두 분에게서 무엇 하나 어긋난 점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검소하고 소박하고 너무도 존경할 만한 분들이었지요』 

대통령 내외가 하와이로 떠나자마자 경찰서에서 나와 물건에 딱지를 붙이고 물건을 실어 내갔다. 모두들 어쩔 줄 몰라 그저 발만 동동 구르며 울었다고 한다. 짐을 실어 내가고 폐가처럼 되어버린 이화장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다가 뿔뿔이 흩어졌다. 

경무대 식구들은 프란체스카 여사가 다시 한국에 돌아온 후 정기적으로 찾아뵈었고 方在玉씨를 비롯해 경무대에서 일했던 많은 사람들이 프란체스카 여사 영결식 때 상복을 입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경무대 식구들은 아들 李仁秀씨 가족들과 내왕을 하고 있다. 

『전 정치적인 건 잘 몰라요. 하지만 그렇게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기운 옷을 입고 아끼느라 물건 하나 제대로 못 쓰는 모습은 모든 국민이 본받아야 돼요. 그때 경무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 그랬어요. 저렇게 살려면 우리는 대통령 안한다고요. 높은 자리에서 그렇게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方씨는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에서 새록새록 李대통령 내외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 .....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지붕 새는 것을 수리하는 일 외에는 손을 못 대게 했다......    ]


“나라 살림 검소하게 하라”


 김용삼 미래한국 편집장 

     2016.02.05 


[새연재] 인간 이승만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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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은 나라 일을 맡은 사람이 자기 집을 고치면 그런 데서 부정부패가 싹트게 된다고 하여 이화장은 물론 경무대도 지붕 새는 것을 수리하는 일 외에는 손을 못 대게 했다. 이승만은 일본식인 경무대의 방들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경비 절약을 위해 일제 시대에 만든 다다미방조차 개조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 


이승만은 자신만 검소한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나라살림도 검소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백두진이 재무부 장관 시절 정부 예산안을 편성할 때 국회 심의보다 이 대통령의 결재를 받는 것이 더 까다로웠다고 한다. 백두진의 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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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174

[ ..... ''식사 기도를 하실 때는 우리나라에 밥 굶는 국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어요.'' ......     ]

이승만 전 대통령도 기운 속옷 입었어요


CBS TV 황민규 수습PD 
2009-01-12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 조혜자 여사가 말하는 

  ''이화장式 절약법''


이승만 전 대통령의 며느리이자 이화장의 안주인인 조혜자 여사(67)가 CBS TV 새롭게하소서(1월14일 방송분)에서 자신의 솔직한 가족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이화장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살았던 사저(私邸). 1968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 이인수 박사와 결혼한 조혜자 여사는 프란체스카 여사가 세상을 떠난 1992년까지 22년간 프란체스카 여사를 시어머니로 모시며, 오늘날까지 이화장의 안주인으로 살아왔다. 늘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프란체스카 여사를 모시고 살면서 많은 어려움과 고비도 있었지만, 묵묵히 대통령의 며느리로 충실히 살아 온 그녀. 그녀는 시어머니의 검소함을 배워 후원이 뜸한 요즘도 여전히 이화장에서 옛 정취와 역사의 숨결을 보존하며 검소하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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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자


▣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깐깐한 시어머니


밥알 한 톨, 두부 한 조각, 콩나물 한 가닥도 함부로 못 버리게 하셨어요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지 않을 만큼 프란체스카 여사는 평소 성품이 검소하고 수수한 여인이었다. 아들 이인수 박사가 출장을 갔다가 사다준 양산을 30년 가까이 사용했고, 40년간 아껴서 입은 검정예복을 며느리 조 여사에게 고스란히 물려줄 정도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속옷이 닳아 구멍이 나도 실로 꿰매 다시 내 놓기도 했단다. ''''시아버님이 시어머님 앞에서는 고맙다 하셨지만 뒤로는 ''''에휴... 이것도 한두 번이지''''하고 푸념을 하곤 하셨어요.'''' 조혜자 여사는 1976년 한 회사에서 에어컨을 기증했을 때도 전력난이 이렇게 심한데 에어컨을 사용할 수 있겠냐며 돌려보낼 정도 였어요''''라고 하며 시어머니 지독한 절약 습관을 회상했다.

▣ 서민들의 생활수준에 맞춘 절약 습관

''식사 기도를 하실 때는 우리나라에 밥 굶는 국민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 하셨어요.'' 조혜자 여사가 밝히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는 늘 국민을 위해고 기도하는 시부모님이셨다. 아침마다 기독교 방송을 시청하시고 나면, 손을 잡고 남북통일과 집 없는 서민들을 위해 기도했던 프란체스카 여사. ''''어머니는 아이들 목욕도 마음껏 씻지 못하게 하셨어요.'''' 평소 근검절약이 몸에 베인 프란체스카 여사는 ''''달동네 아이들은 식수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생하는데 우리도 아끼자''''라고 하면서, 이화장의 모든 생활수준을 서민들에 맞추어 생활하게 했다고 말했다.

▣ 시루떡을 좋아하던 진정한 한국인, 프란체스카 여사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던 음식을 뽑자면 호두과자, 시루떡이에요. 오스트리아 인이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진짜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 같은 모습이었다. 남편 이승만 전 대통령을 하늘 같이 받들고 순종했으며, 며느리 앞에 있던 고기반찬을 슬쩍 아들 쪽으로 밀어 놓는 극진한 한국인의 모성도 가지고 있었다. 쪽진 머리와 한복을 입고 이화장의 손님들을 맞이했던 프란체스카 여사는 제2의 고향인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도 강했다. 임종을 앞두고 성경책과 태극기를 함께 넣어 달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대한민국에 대한 짙은 애국심을 느끼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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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hristian.nocutnews.co.kr/news/5389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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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는 자기 친족과 재산을 챙기기 마련이지만 이 대통령은 하야 이후 사람 키 만한 박스에 막대기를 꽂아 옷장으로 사용했을 정도였다”고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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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진곤 칼럼]  修己治人


            200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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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이화장’이 있다. 그러잖아도 자료를 찾으러 언제 한 번 같이 가자고 약속했던 터여서 20여분 빗길을 걸었다. 찾던 자료는 못 찾았지만 그냥 나오기가 뭣해서 이방 저방 기웃거리는데,아! 눈에 익었으면서도(신문 TV 등을 통해) 새삼스런 광경이 충격을 안긴다. 프란체스카 여사의 속옷들이다.


옛날 신라 적 백결 선생은 깁고 기운 옷을 입어서 그렇게 불렸다더니 이분의 속옷도 기운 위에 덧 기운 자리가 역력하다. 스무 자루는 좋이 넘을 듯한 몽당연필들, 하와이 시절 장롱으로 사용했다는 포장용 종이상자가 또 눈길을 잡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치밀을 극한 해부과학, 철저히 물질화로 환원된 인체가 주는 충격으로 한껏 처졌던 마음이 이분들의 흔적과 거기에 밴 고결한 영혼으로 해서 크게 위안받는다. 기회 있을 때마다 정치적 측면에서 비판을 주저치 않았던 입장이 한참이나 곤혹스러워진다.


수기치인(修己治人). ‘먼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은 후에야 남을 다스린다’고 했다. 이는 유학이 가르치는 정치의 요체다. 우리에게 이를 솔선수범해 보인 이가 이국 태생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부인이다.


그 놀라운 검소 절약의 생활은 이웃,국민 나아가 인간에 대한 사랑의 다른 표현일 것임에 틀림없다. 정치에서도 정말로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사랑’이다. 어떤 거창한 구호와 청사진도 국민에 대한 진실한 사랑이 없을 땐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정치기술에 불과하거나 그것도 못되면 거짓 구호에 그치고 만다.


사랑에 덧붙여져야 할 것은 진지함과 겸허함이다. 자신의 책무에 대해,또 이웃과 국민에 대해 경박하고 교만한 마음을 버리지 못할 때 이 전 대통령 부부와 같은 생활은 흉내라도 낼 수 있는 일이 못된다. 가식으로 시늉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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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5/0000138981?sid=110

            박정희


[ .....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

  .....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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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장군은 군사혁명으로 집권한 뒤에도 검소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 분은 특히 먹는 데 그러하였습니다. 박정희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던 1962년 그의 친구인 한양대 교수 김병희씨가 박의장 방에 들렀다가 놀란 이야기를 쓴 기록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김병희씨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내가 의장실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첫 인상은 그 방이 어쩌면 그렇게도 초라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치 야전사령관이 있는 천막 속을 방불케 하였다. 특히 그가 앉은 의자는 길가에서 구두 닦는 아이들 앞에 놓인 나무의자와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피우는 담배는 국산 '아리랑'이었다. 당시에 내가 피우던 담배는 국산으로는 최고급품인 '청자'였고 때로는 선물로 받은 양담배였다. 

하루는 그 방에 들어갔더니 마침 점심을 먹고 있는데 10원짜리 냄비우동 한 사발과 노랑무 서너 조각이 전부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10원짜리 우동을 50그릇이나 살 수 있는 500원짜리 고급식사를 마치고 온 터라 몹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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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page=0&C_IDX=11579&C_CC=AZ

명동에서 철조망 치고 농사짓는 사나이

趙甲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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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또 1960, 70년대 학교에서 매주 한번씩 실시했던 ‘분식의 날’을 언급하며 “보통 보리밥이나 콩밥을 가져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박 전 대표는 메추리알 크기의 감자만 도시락에 가득 담아왔다. 몸소 실천하는 자세와 국민과 함께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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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601100

"박근혜는 학생때도 원칙주의자"
[중앙일보] 입력 2009.05.09

[ .....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

 .....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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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접해본 이들은 그가 특히 먹거리에 있어서 검소했다고 증언한다. 수출 드라이브 정책이 한창인 1970년대 중반 청와대는 경제 관련 부처 장관과 재벌총수 그리고 여야 대표 등이 참가하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정기적으로 개최했는데, 박 대통령은 회의가 끝난 뒤 점심식사로 우동이나 비빔밥 등을 자주 먹었다고 한다. 비록 말년에는 요정을 자주 찾았지만, 그의 검소한 식생활은 1970년대 중반까지 계속됐다는 게 추종자들의 증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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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대통령은 아침밥엔 보리를 30% 섞었고 점심엔 칼국수를 드셨습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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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검소하고 청렴했다고 하지요. 대표적으로 어떤 게 기억납니까.


“그때는 쌀을 아끼느라 혼식과 분식을 장려하지 않았습니까. 박 대통령은 아침밥엔 보리를 30% 섞었고 점심엔 칼국수를 드셨습니다. 저와 부속실장 등 본관에 근무하는 사람들도 칼국수를 먹었습니다. 저는 점심때도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집무실 책상에서 점심을 때웠지요. 오후 서너 시쯤 되면 배가 고파 참느라고 혼났어요. 비서들은 누룽지라도 찾으러 식당을 기웃거렸지요.”


-칼국수를 드실 때 공깃밥이라도 한 그릇 같이 드시지 그랬습니까.


“아니 쌀을 아끼려고 국수를 먹는데 어떻게 밥을 먹나요. 그리고 대통령께서 그렇게 하시질 않는데 제가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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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840796

“5·16은 근대화 혁명이라고 국내학자들도 이젠 인정합니다”

[중앙일보] 입력 2009.10.24

[ .....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


 ......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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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도 빠짐 없었던 보리 잡곡밥

  박 대통령은 물욕이 없었고 하물며 재산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는 분으로, 이 사실은 서거 후 모든 국민이 실감하고 있는 바와 같다. 나는 그 많은 현장 확인과 현장 지도의 길에 항상 박 대통령을 자동타 또는 헬리콥터 편으로 수행하였다. 아마 나만큼 민간인으로서 헬리콥터를 많이 탄 사람도 전무후무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헬리콥터 기상에서 여기저기 우뚝 솟을 아파트 단지, 아름다운 농촌 주택, 크고 작은 공장들과 대규모 다목적 댐과 방조제, 그리고 간척지 등을 내려다보며 마치 대통령 자신의 아파트나 집과 공장들이 늘어나고 대통령 소유 농장의 구조물이 이것저것 늘어나는 듯 기뻐했다. 박 대통령은 자기 개인의 재산에는 하등 관심이 없고 오로지 나라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잘 되는 것만 바라고 또 기뻐했다. 


  나는 박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파리채를 기억한다. 

  박 대통령이 살던 본관 2층과 집무하던 1층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전기를 아끼려는 뜻이었다. 선풍기는 있었지만 박 대통령은 그것조차 돌리지 않았다. 한여름에 열기가 닥치면 박 대통령은 창문을 열었고 열린 문으로 파리가 날아들어 오곤 했는데 박 대통령은 파리를 잡기 위해 파리채를 휘두르곤 하였다. 


  2층 서쪽 구석에 있는 내방은 오후 내내 뜨거운 햇볕으로 달구어졌다. 땀이 많이 흘렀지만 대통령이 틀지 않는데 내가 선풍기를 돌릴 수는 없었다. 


  박 대통령은 아침, 저녁으로 밥을 먹을 때 꼭 30%는 보리를 섞었다. 

지금처럼 건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쌀을 아끼려고 혼식을 몸소 실천한 것이다. 특별한 행사가 없으면 점심을 멸치나 고깃국물에 만 기계국수였다. 영부인 육영수 여사와 나, 의전수석, 비서실장 보좌관 등 본관 식구들은 똑같이 국수를 먹었다. 장관들도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는 날이면 점심은 국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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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3454707&ctg=10

<김정렴정치회고록>16. 박정희 대통령의 근검절약
[중앙일보] 입력 1997.05.15 


         *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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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71년 다수확 통일벼가 농가에 보급되기 시작하고 영농기술이 향상되면서 1977년 쌀 자급 시대가 열렸다. 정부는 분식의 날도 없애고 쌀 막걸리 제조도 14년 만에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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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10.

박정희의 해진 혁대, 도금이 벗겨진 넥타이 핀 


趙甲濟 月刊朝鮮 편집장 

1979년10월26일 저녁 경복궁 앞 국군병원에서는 이미 시체가 된 박정희를 놓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필자의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에서 인용한다. 

< 두 정보부 경비원 유성옥과 서영준은 허리에 권총을 차고 있었다. 그 권총을 일부러 보이면서 둘러 선 군의관과 위생병들에게 "꼭 살려야 해요" 라고 위협조로 말했다. 정규형 대위는 이우철 일병에게 심장마사지를 하라고 지시했다. 이일병은 환자의 가슴 위로 올라가서 두 손을 포갠 뒤에 왼쪽 가슴을 몇 차례 강하게 눌렀다. 동시에 정 대위는 수동식 인공호흡 기 "암부"를 환자의 입과 코에 덮어씌워 놓고 공기주머니를 눌러 공기를 허파로 밀어보냈다. 


정 대위는 심장을 자극하여 박동하게 하는 강심제 에피네프린 20cc를 가슴에 주사했다. 심장마사지도 다시 했다. 한 20분간 응급소생법을 실시했으나 결과는 회생불능이었다. 

정 대위는 "도저히 안되겠습니다"라고 했다. 송계용 소령이 "돌아가셨습니다"라고 곁에 버티고 있는 두 감시자에게 이야기했다. 


"이 사람이 누구십니까.". 


송 소령의 물음에 두 감시자는 대답이 없었다. 며칠 뒤 군의관 정규형 대위는 합수부에서 조사를 받을 때 "얼굴을 보고도 왜 각하인줄 몰랐는가"란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답했다. 


"병원에 들어왔을 때는 얼굴에 피가 묻어 있었고 감시자들이 응급 처지중에도 자꾸 수건으로 얼굴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시계가 평범한 세이코였고 넥타이 핀의 멕기가 벗겨져 있었으며 혁대도 해져 있었습니다. 머리에 흰 머리카락이 약간 있어 50여세로 보았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 사실로 미루어 각하라고는 상상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 

한국의 좌파가 원수처럼 욕을 퍼붓고 있는 박정희는 죽을 때 "평범한 세이코, 멕기가 벗겨진 넥타이 핀, 해진 혁대"를 차고 있었다. 그의 집무실과 침실 화장실 물통에는 벽돌 한장씩 들어 있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그의 집무실에는 선풍기와 파리채가 있었다. 기름 절약을 위해서 한여름에도 에어컨 사용을 통제했던 그는 문을 열어놓고 선풍기를 틀면서 더위를 견뎠다. 벌레가 들어오면 파리채로 잡았다. 


그가 죽을 때 입고 있던 바지는 허리 부분을 수선하여 늘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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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 .......    ]


“수십 년 지나도 8·15 돌아오면 수술받던 육 여사 생각나” 

중앙선데이

2011.08.13 

한나라당 비례대표 이애주(65·사진) 의원은 간호사 출신이다. 그의 간호 경험은 남다르다. 1969년부터 35년간 서울대 병원 간호사로 일했는데 대부분의 기간 동안 VIP 병실 책임자였다. 젊은 시절 그는 파독(派獨) 간호사를 꿈꾸던 가난한 고학생이었다. 징그러운 가난을 떨쳐 버리기 위해 돈 많이 벌 수 있는 풍요의 나라를 떠올렸다. 하지만 꿈과 달리 특별한 환자들의 곁을 지키는 게 그의 임무였다. 74년 초 VIP 병실인 특실(301호) 담당 수간호사가 된 뒤 그는 이승만·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한 대한민국 모든 대통령을 서울대 병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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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원에게 오랜 병원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물었다. 37년 전인 74년 8월 15일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꼽았다.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 저격범 문세광의 네 번째 총탄이 육영수 여사의 머리를 관통했다. 


“한복 속옷을 기워 입으셨더라고요. 글쎄…”라며 육 여사의 베치코트 얘기를 먼저 꺼냈다. 한복 치마를 풍성하게 만드는 일종의 속치마가 베치코트다. 통상 한복을 맞출 때 한꺼번에 만든다. 하지만 육 여사는 단을 덧대 3단으로 재활용한 베치코트를 최후의 순간에 입고 있었다. 듬성듬성 꿰맨 손바느질 흔적이 여기저기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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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 여사는 그날 오전 10시23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의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저격범 문세광이 쏜 총탄에 맞았다. 원남동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옮겨진 게 9분 만인 10시32분. 응급 조치와 뇌 수술을 위해 머리카락을 깎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광복절 휴일이었지만 집에서 TV를 지켜 보던 의료진이 속속 병원으로 뛰어나왔다. 11시쯤 신경외과 과장 심보성 교수가 메스를 들어 시작된 수술이 오후 4시20분까지 5시간 넘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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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은 평소 301호실을 이용했나.


“입원한 적은 없지만 79년 10월 초 입원 계획이 있었다. 안과 수술이 예정돼 내가 동대문시장으로 침대시트·치약·칫솔 등 병실 비품을 사러 다녔다. 국산품이 아니면 대통령께 야단맞기 때문이었다. 1m65㎝ 체구에 맞춰 국산 가운과 슬리퍼를 장만했다. 하지만 부마 사태 등으로 입원이 연기되더니 10월 15일 입원한다고 다시 통보가 오고, 이어 10·26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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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장면인가.


“특실에 오는 분은 예외 없이 예외를 원했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병원 규칙을 가장 지키지 않는 분들이다. 아프지도 않은데 입원해 하루 종일 사람 만나고 물건이라면 모두 외제품이고…. 

나는 박정희 대통령 때 야당 의원은 민주주의 화신인 줄 알았다. 하지만 병원 생활하면서 환상이 많이 깨졌다. VIP가 입원하면 통상 우리 직원들이 알아서 예외를 감수한다. 그래도 힘든 일은 넘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애기 울음 소리 녹음하려고 병실에 녹음기를 켜 놨는데 간호사가 몰랐던 모양이다. 간호사가 ‘아기만 국산이네’라고 중얼거린 말이 녹음돼 난리가 벌어졌다. 어떤 장관님은 병원에 에어컨 고장 났다고 병원비를 깎으라고 호통치고…. 박정희 대통령 때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 중 쓰러져 5년 반이나 입원한 VIP가 있었다. 우리는 의식불명으로 알았는데 어느 날 TV에서 박 대통령 뉴스가 나오자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라. 아주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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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joongang.co.kr/article/5969972


         2000.6.


* 김정일과 곰발바닥 요리


  (趙甲濟)


   
2000년 6월13-15일 평양회담 때 북한측이 한국측에 제공한 진수성찬 가운데서 특기할 만한 것들이 있었다. 

   
상어지느러미: 중국 음식점에 가서 상어지느러미 찜이나 수프를 식히면 최저 1인당 30000원 이상이 나간다. 그래서 상어지느러미 요리는 중국 음식 중 高級이냐의 여부를 가리는 한 잣대가 되고 있다. 이번에 북한측이 내어놓은 상어지느러미는 특별한 것이었다. 야자수 열매(코코넛)를 자르고 속을 파낸 다음 그 속에다가 상어지느러미 수프를 담았다는 것. 

   
곰발바닥 요리: 김정일이 이 요리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인데 과연 이 요리가 나오니까 한 訪北者는 김정일에 대한 남한측 정보가 정확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고 한. 
   

물김치: 배를 잘라내고 속을 파낸 다음 그 속에다가 김치를 담았다. 
   
돌불고기: 불에 달군 돌 위에 고기점을 올려 놓으면 자동적으로 굽히게 한 것. 
   


이상의 요리는 북한 고위층의 것이 아니고 김정일의 전용 메뉴 같았다고 한다. 배고픈 북한에 가서 남한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고 온 訪北者들 중에는 "굶주리는 동포들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생기더라"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손님대접은 융숭할수록 좋다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나라 대통령들은 손님들에게도 국수를 내놓곤 하여 청와대에 들어갈 때는 미리 밥을 먹고 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김정일은 同席한 이들에게 곰발바닥 요리가 정력에 좋다면서 농담을 늘어놓았고, 남측 인사들은 유쾌하게 웃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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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chogabje.com/board/view.asp?C_IDX=83&C_CC=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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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樽美酒 千人血(금준미주는 천인혈)
금동이의 좋은 술은 일천 백성의 피요
玉盤佳肴 萬姓膏(옥반가효는 만성고)
옥소반의 아름다운 안주는 일만 백성의 기름이라

燭漏落時 民淚落(촉루낙시 민루락)
촛농 떨어질 때 백성 눈물 떨어지고
歌聲高處 怨聲高(가성고처 원성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 소리 높았더라.


춘향전 중 이몽룡이 변사또 생일에 남루한 거지 행색으로 참석해 붓을 들어 관장들의 포학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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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남북정상선언] 천호선 대변인 방북 뒷얘기

     2007.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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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오찬 분위기가 무르익자 안숙선 명창이 자리에서 일어나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를 부르며 흥을 돋웠다. 이때 김용옥 교수가 노 대통령, 김 위원장과 함께 헤드테이블에 앉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을 일어나게 한 뒤 그 자리에 앉아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즉석 고수'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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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히 샥스핀을 좋아해서 사흘 내내 샥스핀 요리만 먹은 적도 있다 .......    ]


김정일 / 여담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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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 세계 각국의 고급 요리를 즐겼지만 주로 깊고 진한 맛을 좋아해서 중국 요리를 가장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 특히 샥스핀을 좋아해서 사흘 내내 샥스핀 요리만 먹은 적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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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5.29.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

[ ..... 포도주에 샥스핀 수프, 기름진 음식, 달짝지근한 술, 노래 그리고 춤 …...    ]

 

″하필이면 이때 자축연  청와대가 노래방인가″…


‘당선자 만찬’ 비난여론
 


     2004.05.31. 

   지난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 초청 열린우리당 의원 및 중앙위원 만찬에서 노 대통령과 의원들이 총선 승리를 자축하며 노래까지 부른 데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청와대가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사회를 본 김부겸 의원이 즉석에서 몇몇 사람에게 노래를 시킨 것뿐인데 마치 호화판 연회라도 벌인 것처럼 잘못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 청와대 해명이다.

 ‘선각자’라는 네티즌은 31일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에 “청와대가 일 개인의 사저가 아닌 국가 관저인데, 우리당이 노래방으로 만들었다니 참 한심하다”면서 “자축은 경제를 살려 국민의 칭송이 자자할 때 해도 늦지 않다”고 꼬집었다. ‘겁데기’라는 네티즌도 “30만명의 아동과 그보다 더 많은 노인들이 끼니를 거른다고 한다”면서 “이런 때 청와대에서 꼭 만찬이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알갱이’라는 네티즌은 “국민들이 국민연금 촛불시위를 벌일 때 청와대에서 술 퍼마시고 노래까지 하면서 질펀하게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면서 “그 자리에서 국민사기보험(국민연금)에 대해 언급한 사람이 있었나”라고 흥분했다.

 한나라당 전여옥 대변인은 논평을 내 “포도주에 샥스핀 수프, 기름진 음식, 달짝지근한 술, 노래 그리고 춤…. 먹고 마시고 춤춘 청와대 만찬장의 모습을 국민들은 한숨과 절망으로 지켜봤다”고 꼬집었다. 이어 “경제 위기가 아니라 경제 참상의 시대인데, 입으로는 국민이 두렵다면서 국민의 고통과 절망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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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5&aid=0000163509


[ ...... 청와대에서 중국식으로 만찬을 ......

  ..... 메뉴로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수프) 등 7가지가 나오고 포도주가 곁들여 ......      ]

“샥스핀에 노래… 권력에 취했나”


   2004.05.31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29일 열린우리당 17대 국회의원 당선자·중앙위원을 초청해 청와대에서 중국식으로 만찬을 하며 ‘부산갈매기’ 등의 노래를 부른 것을 두고 한나라당이 31일 공세에 나섰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경남지사 보궐선거 지원유세에서 “대통령이 2시간30분 동안 얘기했지만 경제살리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4백만 신용불량자의 고통과 거리를 헤매는 50만 청년 실업자의 눈물, 30만 결식아동의 굶주림을 생각했다면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가 나왔어야 했다”는 지적이었다. 한마디로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는 주장이었다.

전여옥 대변인은 좀더 직설적이었다. 전대변인은 ‘국민이 두렵지 않은가’라는 논평을 통해 “메뉴로 샥스핀(상어 지느러미 수프) 등 7가지가 나오고 포도주가 곁들여졌는데 국회가 개원도 하기 전에 권력에 취하고 승리에 오만한 모습을 국민은 한숨과 절망으로 지켜보았다”고 말했다.

이어 “뭘 그리 잘하고 자랑스러워 이처럼 요란한 잔칫상을 벌이고 춤과 노래로 들썩거릴 수 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한 당직자는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남원 사또인 변학도의 생일잔치에서 읊었던 ‘가성고처 원성고(歌聲高處 怨聲高·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높구나)’라는 시가 생각났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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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khan.co.kr/politics/politics-general/article/200405311858501

         2003     권노갑에 대한 증언

[ ...... 상어 지느러미찜과 그 달의 이벤트 음식을 시키고 고급 포도주 딸보를 주문하곤 했다 ........      ]

100만원 넘는 호화식사… 권노갑씨 週 3~4회 즐겨
 

       2003.10.28. 
 
 

    현대 비자금 2백억원 수수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있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이 기업인등을 만나면서 삭스핀 찜등 한번에 1백만원이 넘는 호화판 식사를 주 3,4회씩 즐겼다는 법정증언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28일 서울지법 형사3단독 황한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공판에서 변호인측 증인으로 나온 신라호텔 직원 유모씨(여)는 권 전 고문이 일주일에 서너번 찾아와 상어 지느러미찜과 고급 포도주 등을 즐겨 먹었다며 식사비는 1인당 30만원선으로 4명이 식사하면 부가가치세 등을 포함해 1백40만원 정도 나왔다고 진술했다.


유씨는 권씨는 평소 1인분 7만~8만원 상당의 상어 지느러미찜과 그 달의 이벤트 음식을 시키고 고급 포도주 딸보를 주문하곤 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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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증인 신문에 앞서 변호인측이 현금 상자 19박스를 싣고 운전자가 탑승하면 6백 에 달한다며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이 운반했다는 승용차에 현금 박스를 직접 싣고 차가 잘 굴러가는지 검증해 보자며 재판부에 이례적인 현장검증 요청을 했고,재판부가 이를 허락해 눈길을 끌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15&aid=0000655813

[ ..... 식사 한번에 5천만원을 쓴 적이 있다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있고,  호텔에서 1인당 20만~30만원짜리 식사를 즐겼다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      ]

[여적]  정치인의 밥값
 

      2003.10.29. 

 
 
    점심 때면 서울 종묘공원 돌담길을 따라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자선단체의 공짜 점심을 기다리고 있는 노인이나 노숙자들이다. 불황기를 맞은 요즘에는 그 줄이 더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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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인생은 경이로운 것이다. 유복한 인생 또한 얼마나 넘쳐나는가. 가령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새끼 비둘기로 되어 있는 한끼를 먹고 5천5백만원을 밥값으로 낸 사람이 있다. 올해 초 중국 시안(西岸)의 한 식당이 이런 황제요리 메뉴를 내놓았는데 실제 그런 식사를 하고 식대를 낸 사람이 있다고 한다. 


물론 이렇게 한끼에 얼마를 써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식사 한번에 5천만원을 쓴 적이 있다는 박지원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있고, 호텔에서 1인당 20만~30만원짜리 식사를 즐겼다는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도 있다. 특히 권고문에게 그런 식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의탁 노인이 수시로 공짜밥을 얻어먹듯이 1주일에 3~4차례 그런 식사를 했다니 노인이라고 다 같은 노인이 아니다.


오랜 세월 풍찬노숙하며 민주화 투쟁, 야당을 하고도 한 자리 못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권력을 잡았고 대통령도 되고 장관도 되었다. 그것으로 보상은 끝났다. 그들은 이제 다른 것, 국민들이 새로이 요구하는 것을 듣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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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렇게 흥청망청일 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 측근도 배웠는지 벌써 돈잔치 추문이 역겹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가야 한다. 보상을 해 주느라 멈출 새가 없다. 그런데 신당한다는 사람이 미군 카지노에서 노름이나 하고 뒷걸음질이다. ‘밥값하는 정치’를 바라기는 턱없다. “오늘 밥값으로 얼마나 썼지”. 이런 생각이나 한번 한다면 다행이겠다. 


이대근 논설위원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0038316?sid=110


 '새것 비치했습니다'… 비서가 李 욕실에 에르메스 로션까지


      2022-02-04     이주희 인턴기자

“로션 교체해놓고 남은 건 합체시켜.”

“새 것은 지사님 욕실에 배치했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뒀습니다.”


공개된 내용 중 온라인상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심부름은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 로션을 이 후보의 욕실에 비치하는 일이다. 월간조선에 따르면 배씨는 텔레그램을 통해 A씨에게 ‘○○○에게 로션 받아서 교체해 놓고 남은 거 두 개 합체 시켜’라고 지시했다. 이에 A씨는 ‘○비서에게 받아서 새것은 지사님 욕실에 비치하였고, 남은 건 모아서 거실에 두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대화와 함께 해당 제품의 사진이 등장하면서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렸다. 이 지사가 사용한 제품은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의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으로 남성들이 면도 후 피부 진정을 위해 바르는 로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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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에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담은 국내외 온 ·오프라인서 판매되는 애프터 셰이빙 제품 중 가장 비싼 군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떼르 데르메스 애프터쉐이브 밤(에르메스, 100ml)의 공식 홈페이지 판매 가격은 98,000원이다. 디올 맨즈(100ml)와 샤넬 맨즈(90ml) 제품은 7만원대이다.


https://www.sedaily.com/NewsView/2620EB3AJO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 ....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

 .....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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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직원으로 청와대에 상주하면서 이발을 하기 시작한 것은 朴正熙 대 통령의 권유 때문이었습니까

『1969년 청와대 內 비서실 건물을 새로 지으면서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도 마련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발을 하기 위한 전용 공간이 없었습니다. 이른바 간이 이발관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15평 규모의 전용 이발관이 마련된 직후 하루는 대통령께서 이발을 하시기 위해 저를 찾는다는 전갈이 부속실에서 왔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곧바로 청와대로 올라갔습니다.


그날 朴대통령께서는 이발을 하시기 위해 이발관으로 들어오셔서는 저를 보고 「朴군, 이제 이발 시설도 갖추고 했으니 왔다갔다 하지 말고 이곳에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떤가」고 물어 오셨습니다. 제가 얼른 대답을 하지 않자 대통령께서 재차 「왜 나와 함께 생활하는 것이 싫은가」고 하시더군요. 제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알겠습니다. 어르신의 지시를 받들겠습니다」고 말씀을 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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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의 이발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운영하던 이발소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전후사정을 설명하고는 그날로 이발관 문을 닫아 버렸다고 한다. 朴씨는 이날부터 19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이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他界하는 날까지 항상 朴대통령 곁에서 생활했었다.


『朴대통령은 싸구려 스킨 로션을 좋아했다』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 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 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 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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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이 이발을 할 때 陸英修 여사도 자주 이발관에 오시곤했다는 얘 기를 들었습니다만.


『그랬습니다. 陸여사께서 자주 이발관에 오셨습니다. 오셔서 朴대통령 머리 만져드릴 수건을 적당한 온도의 물에 적셔 저에게 주시곤 하셨습니다.
여름에도 절전운동 때문에 이발관에 에어컨을 잘 가동하지 않았는데, 陸여사께서 선풍기를 들고 오셔서 朴대통령에게 틀어 주신 적도 많았습니다』


『朴대통령은 곱슬머리』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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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씨는 얘기를 하던 도중 한가지 가슴 아팠던 기억이 떠올랐다며 소개해주었다. 신축한 비서실 건물이 완공되기 전인 1966년 겨울에 있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때는 전용 이발 공간이 갖추어지기 전이기 때문에 머리 감을 때 사용하는 샤워 시설이 돼 있지 않아 더운물은 다른 곳에서 가져다 사용했다고 한다. 이날도 陸여사가 더운물과 찬물을 양동이에 받아와 세면대에 담아 놓았는데 머리를 감던 중 朴대통령이 비눗물에 미끄러지면서 오른쪽 허리를 다쳐 몇 달을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 바닥에는 미끄럼 방지용 타일이 부착돼 있지 않은데다 세면대도 낮아 미끄러지기 일쑤였다는 것.


朴씨는 당시 이 나라 최고 권력자가 이처럼 낡은 시설에서 이발을 하고 있었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느냐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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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 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 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 잃지 않아


―朴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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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onthly.chosun.com/client/reporter/writerboardread.asp?idx=28&cPage=16&wid=soonj
청와대 이발사가 본 「인간 박정희」; 『어르신 생각하면 눈물만 납니다
송승호  
2001.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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